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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상식

영국의 사회복지 역사1

by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2013. 12. 18.

찰스 부스와 라운트리의 빈곤 조사를

비교 분석하여 차이점 및 한계점 

 

 

- 찰스 부스는 토인비홀을 중심으로 인보운동을 하였다. 1886년에 400만 런던 시민들의 생활상태를 조사하였다. 개인적인 주관, 편견, 정치적인 철학 없이 실증적인 사실을 추구하였다. 조사한 결과 1889년에 「런던인의 생활과 노동」(17권)을 발표한다. 런던시민의 30.7%가 런던의 빈곤층으로 조사되었다. 찰스 부스는 빈곤 계급을 AB, CD, EF, GH로 구분하였다. A는 극빈자, 부랑자, 범죄자 등으로 구성되었고 0.9%를 차지한다. B는 호구지책으로 살아가는 임시노동자를 의미하고 7.5%를 차지한다. C는 정규노동이 아닌 임시직, 계절성이 반영된 노동자계층이다. CD는 22.3%를 차지한다. E층은 하층 노동 귀족층이고 F는 상층 노동귀족층이다. EF는 51.5%를 차지한다. G는 중산계급의 하층, H는 중산계급의 상층을 말하고 이들은 17.8%를 차지한다. 여기서 ABCD층을 빈곤층이라고 규정짓는다.

찰스 부스의 빈곤 조사의 의의는 자유방임적인 생각,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했던 자조를 타파했고, 빈곤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생각을 저변화시켰다. 그러나 찰스 부스의 빈곤조사 한계는 빈곤선(poverty line)에 대한 기준이 결여되어 있다. 빈곤선이 21실링(주급) 수입 이하면 빈곤층이라고 규정지었다. 왜 21실링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다. 그리고 다분히 도덕적인 기준이 섞여 있다. 또한 직접 조사하지 않고 교육청, 지방청 자료에 많이 의존한 점도 한계에 속한다.

시봄 라운트리는 자유주의적인 사람이고, 찰스 부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찰스 부스의 빈곤 조사를 보고 1899년에 내가 살고 있는 요크시도 그러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조사를 시작하였다. 찰스부스가 자원봉사자를 고용한 데에 비해, 전문 조사원을 고용하였다. 그리고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일일이 세세한 부분도 다 조사하였다. 상층시민을 빼고 순수 노동층인 4만 7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1901년 「빈곤: 도시생활의 연구」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서 요크시의 27.84%가 빈곤층이라고 밝혔다. 1차 빈곤과 2차 빈곤으로 나눌 수 있다. 1차 빈곤은 최저소득마저도 갖지 못하는 상태, 수준이라고 규정지었고 9.91%를 차지한다고 했다. 2차 빈곤층은 위 사항에는 충족하나, 소득의 일부가 다른 쪽으로 유용이 되는 사람들을 일컬었다. 병원비라던지, 다른 이유로 빈곤해진 사람들을 2차 빈곤층이라 하였고 17.93%가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나눈 이유는 빈곤의 원인이 개인의 낭비심이냐?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빈곤순환이라는 것을 주장하여 어린애들이 있으면 빈곤해지지만 장성하게 되면 빈곤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장성하여 벌어들여 오는 수입이 생기므로 빈곤해지지 않지만 자식들이 결혼하여 나가게 되면 부수입이 줄어들어 다시 빈곤해진다고 보았다. 자식 세대 또한 이 과정을 거친다고 보았다. 가족의 연령도 빈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라운트리는 빈곤선은 21실링 8펜스라고 보았다. 요크시의 물가까지 고려하였다. 찰스부스보다 더 객관적이라는 평가다.

이 빈곤 조사의 결과는 노동자들이 빈곤해지는 이유를 경제적 원인과 사회적 원인 두 가지로 보았다. 그리고 국가적 효율성을 원한다면, 즉 건강한 노동자가 건강한 노동력을 낳는다는 전제하에 국가가 이러한 빈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운트리는 이후의 정당의 복지정책에 많이 참여하였다. 후에 로이드 조지의 법과 연결이 된다. 그러나 보수 측에서의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특히 COS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찰스부스를 “나태한 노동자들을 창출해내는 장본인이다”라고 비판하였다. 라운트리의 빈곤조사의 의의는 찰스부스보다 더욱 더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빈곤선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빈곤선이란 생물학적 욕구에 사용할 수 있는 최소 수입이라고 규정 지었다. 1913년에는 농촌 노동자까지 확대되었다. 많은 호응을 얻었으나 이 또한 COS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라운트리의 빈곤 조사의 한계는 최저소득을 정할 때 남성노동자를 기준으로 하였다. 남성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인, 3300kcal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는 구빈원보다 더 열악한 수준으로 기준을 삼은 것이다. 상대적 빈곤이 결여됐으나, 이 시대에는 절대적 빈곤에서 이루어졌다.

찰스 부스와 라운트리의 빈곤조사의 의의와 영향은 첫 번 째, 자유방임적 빈곤관에 타격을 주었다. 빅토리아 시기의 자조, 검약이 쓸데없는 것, 수정되는 시기이다. 복지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지고 국가의 정당한 개입과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였다. 두 번째는 라운트리 조사가 자유정부 입법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 세 번 째는, 베버리지 보고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마지막으로 찰스부스는 대규모 조사에 해당되는 사회다각적 조사에 영향을 미쳤고 라운트리는 경험적 접근법조사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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