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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상식140

한용운 -꽃이 먼저 알아 - 꽃이 먼저 알아 옛 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의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라서 아득한 옛터이 이릅니다. 지팡이는 푸르고 푸른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다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여 근심을 잊을까 하고 앉아 보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 하였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 2013. 12. 31.
한용운 - 論介의 愛人이 되어 그의 廟에 - 論介의 愛人이 되어 그의 廟에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그대는 어디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구나 나는 황금의 칼에 베혀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로운 그대의 당년(當年)을 회상한다 술 향기에 목마친 고요한 노래는 옥(獄)에 묻힌 썩은 칼을 울렸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 바람은 귀신(鬼神)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 가냘픈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 보다도 더욱 .. 2013. 12. 31.
한용운 - 찬송(讚頌) - 찬송(讚頌)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鍛練)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의(義)가 무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복(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오동(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약자(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慈悲)의 보살(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여 2013. 12. 31.
한용운 -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죽은 줄 알았던 구슬 같은 꽃망울을 맺혀 주는 쇠잔한 눈위에 가만히 오는 봄기운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밖에 다른 하늘에서 오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모든 꽃의 죽음을 가지고 다니는 쇠잔한 눈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구름은 가늘고 시냇물은 얇고 가을산은 비었는데 파리한 바위 사이에 실컷 붉은 단풍은 곱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풍은 노래도 부르고 울음도 웁니다. 그러한 '자연의 인생'은 가을 바람의 꿈을 따라 사 라지고 기억에만 남아 있는 지난 여름의 무르녹은 녹음이 주는 줄을 아십니까 일경초(一莖草)가 장육금신(丈六金身)이 되고 장금육신이 일경초가 됩니다 천지는 한 보금자리요 만유(萬有)는 같은 소조(小鳥)입니다 나는 자연의 거울에 인생을 비춰 보았습니다 고통의 가시덤불 뒤에 환희의 낙.. 2013.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