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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상식

오장환 - 손주의 밤 -

by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2014. 1. 4.

손주의 밤
들창 박게는
어둠과 치위가 둘러싸고 잇는데
늙은 하라버지는 손주의 집세기를 삼고
어제까지 소리를 내어
가에다 기억하면 각하고 가에다 니은하면 간하고 외우치던 손주아이가
오늘은
우리들 우리들 그리고 동무 동무 하고 외운다.
우리들 우리들은 무엇이고
동무 동무는 무엇이냐
평생을 두고 농사만 짓든 사람이
이제는 떼를 지어
밤에도 산속에서 통나무를 집히고
아베와 형들은 언제나 도라올건가
아베나 형들은 어느때나 돌아올 수 잇슬가
온종일 산ㅅ 발을 헤치고 다니며
망태기에 가랑입을 글거온 손주아이는
그 불땐 방에서 마음조차 안뇌이는 공부를 하다가
선생이 도라가면
그대로 누어서 이불도 업시 새우잠이 들을 것이다
온 집안이 뼈가 빠지게 논밭은 가꿔도
삼동을 모두가 포대기 하나업시 살어가는 이 집안
손주아이마저 원망스러운 목청으로 힘을 돗구어
우리들 우리들 그리고 동무 동무하고
외우치는 이 소리는 무슨 뜻이냐
들창박게는
어둠과 치위가 애워싸고 잇스나
석가래도 얏튼 방안에는 등잔불을 켜노코 화루를 두루고
늙은 하라버지는 억울한 심사를 누르며
손주의 집신을 삼고
손주의 눈초리는 독수리의 눈으로
새로 새로 나타나는 글자와 거기에 나타나는 말뜻을 찾는다.
(自由新聞[자유신문], 194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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